김 창 영 한국안전인증원 이사장 미국의 심리학자, 철학자이자 인본주의 심리학의 창설을 주도한 에이브러햄 매슬로(Abraham H. Maslow·1908~1970). 그는 인간은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에서 사랑, 존중, 궁극적으로 자기실현에 이르기까지 충족돼야 할 욕구에 위계가 있다는 '욕구 5단계설'을 주장했다. '생리적인 욕구(Physiological Needs)'가 충족된 인간에게는 안전과 보호, 경제적 안정, 질서 등에 대한 것으로, 일종의 자기 보전적 욕구인 '안전욕구(Safety Needs) 단계'로 넘어간다고 했다.
소득 수준에 따라 국민의 요구 수준 역시 달라진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1만 달러 일 때는 '환경', 2만 달러가 되면 '안전', 3만 달러에 진입하면 '보건'이 일반화 된다. 한국의 지난해 기준 1인당 국민소득 2만7340달러였다. 안전에 대한 욕구는 차고 넘친다. 국민의 정신· 심리적 요구수준은 이미 3만 달러 수준에 도달했다. 이제 '안전'은 시대적 사명이자 요구다.
안전욕구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분노로 표출됐다. '자신과 가족에게도 혹시'라는 불안전, 불안감이 팽배했다. 세월호 2주기에 시민들이 비를 맞으며, 서울광장으로 나온 이유다.
인간에 대한 원초적인 욕구를 무시한 정치 불신이 4·13 총선을 통해 투영됐다. 16년 만에 '여소야대' 정국이 탄생했다. '박근혜 정권' 탄생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 '4050세대'는 세월호 부모세대다. 그들이 '총선 민의'를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세월호 이후에도 '안전 적폐'는 해소되지 않고 있다. 퇴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시성 행사만 난무하고 있다. 세월호 이후 정부는 가장 신뢰 받는 소방방재청을 해체하는 과오를 범했다. 아무 죄도 없는 소방방재청만 해체돼 신설된 국민안전처로 흡수돼 소방본부로 격하됐다.
재난현장에서 구조를 담당하는 소방관은 대부분 지방직이다. 지자체의 '부익부 빈익부'가 국민안전을 볼모로 잡고 있다. 세월호 수색을 마치고 복귀하다가 광주에서 추락한 강원도 소방헬기 구입비용도 결국 가난한 지자체 예산으로 메웠다. 이러니 타 지역 구조활동에 누가 선뜻 나서겠는가. 오죽하면 목장갑을 끼고 재난현장에서 투입되는 소방관이 있을 정도다.
정부는 지방사무를 담당하기 때문에 지방직으로 존치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한다. 괘변에 불과하다. 경주 마우나 리조트, 태안 해병대 짝퉁캠프 사고, 세월호 참사에 이르기까지 희생당한 사람 대부분은 그 지역 사람들이 아니었다. 정부의 논리라면 열악한 지방재정으로 '외지사람'을 구조하고 있는 셈이 된다. 재난업무를 '지방사무'로 보는 시각 자체가 문제다.
세월호 사고 이후 소방조직의 격하로 국민과 소방관이 분노하자 여야는 2014년 10월 31일 소방관을 단계적으로 국가직으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하고 서명까지 했다. 하지만 20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쇼를 한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 시·도지사의 지휘를 받는 소방관은 지휘계통에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재난안전 전문부처인 국민안전처가 출범한 마당에 박인용 장관이 단호한 지휘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소방관 국가직 전환은 선택사항이 아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34조 6항은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 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소야대 정국으로 변한 19대 국회가 지난달 21일부터 한달일정으로 마지막 임시회에 들어갔다. 국회는 헌법에 명시한 것처럼 '민의'를 반영해야 한다. 국민에 사죄하는 마음으로 양당합의 사항을 조속히 시행해야 한다. 안전의 '골든타임'을 소비한다면, 누군가 또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것이 자명하다. 디지털타임스(2016. 5. 2) |